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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욕망의 다른 이름, 불안

★★★★ - 이 책이 '두통엔 펜잘' 처럼 불안을 해소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신은, 어쩌면 우리에게 끊임없는 실마리를 신호로 보내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지난해 시작된 슬럼프에 허우적 거린지 벌써 몇달,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제 주변에는 이를 고민하고 헤쳐나갈수 있는 화두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주어진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최근에 운전할 일이 많아지면서 라디오를 자주 듣는데, 유독 요즘은 '행복'에 대한 DJ 들의 이야기가 귀에 많이 들어옵니다. 행복하기 위한 삶의 방식에서 소유로 인한(더 많이 가짐으로써) 불안까지 귀를 스쳐간 이야기들은 결국 저의 오랜 고민들을 풀어 나가는 실타래의 끝이 되어준거죠. 알게 모르게 속삭이듯 메일박스를 채우는 메일링 리스트의 내용들도 마찬가지고, (저의 고민을 알리가 없는)처제가 소개해준 이 책, 알랭 드 보통의 불안도 그런 식으로 제게 다가온 책이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우리는 왜 불안해 지는 걸까요?, 아니 저는 왜 불안해 하는 걸까요?  

가난이 자존심에 미치는 영향은 공동체가 가난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방식에 결정적으로 좌우된다.


인용한 문구에는 '가난'이 주어이지만, 그곳에는 다른 단어들, 일테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다른 단어들을 대입해도 그대로 적용이 가능합니다. '실패', '소외' 등등이 그대로 가능하다는 거죠. 책의 표지에도 있지만, 우리는 보다 유명해지고, 중요해지고, 부유해지고자 하는 욕망으로 인해 불안해진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는 유명,중요,부유 가 아닙니다. 놀라셨나요?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보다' 입니다. 비교급이죠.

과거 귀족사회 혹은 봉건사회에서는 우리의 삶이 훨씬 더 팍팍하긴 했어도 성공한 사람들의 성취나 귀족들을 자신과의 비교 기준으로 삼을 필요가 없는 자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그들은 열등감에 시달릴 이유가 없었고 불안해 할 필요가 없었던 거죠.

하지만 최근의 (책에서 말하길)민주사회는 그러한 자유마저 박탈해 버렸다고 합니다. 모든 구성원들에게 평등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주고 대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실패자로 낙인이 찍히게 되는 시스템이 되어버립니다. 또한, 민주주의의 평등사상은 누구나 평등한 기회속에서 성공과 상승을 이루어 낼수 있다는 부추김을 당연스레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실상 그런 성취를 일궈내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예외가 규칙이 될 수는 없으며, 다수는 상승에 실패하여 그들은 상대적 박탈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우리가 분명 과거보다 실제적 궁핍은 급격하게 줄었음에도, 역설적이게 궁핍감과 궁핍에 대한 공포는 외려 늘어나고 있는것이 바로 그런 원인에 있다고 합니다. 고개가 끄덕여 지는 대목이죠.

또 과거에는 다수의 평민(농부)들이 귀족과 지주, 그리고 기독교를 지탱하는 사회의 기반 계층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지속적인 착취를 목적으로한) 의도적인 도덕적 우월감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들의 가난 혹은 무능력이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었던 거죠.

하지만 근대에 와서 애덤스미스의 국부론 이후 부자들이 오히려 세상을 윤택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며, 하위계층은 그들 스스로의 무능력과 부패로 인해 그렇게 되었다는 쪽으로 인식이 변화했다고 합니다. 결국 이러한 능력주의는 사회적 약자층에게 빈곤과 더불어 도덕성이라는 비수까지 꼽아 버린거죠.

또 불안의 원인에는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재능이나 운 과 같은 내재적 불확실성 뿐만 아니라, 고용주(에 영향받을수 밖에 없는 구조)와 세계경제라고 하는 외재적인 불확실성 까지 더해지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본질적으로 불안을 피해갈수가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게 되는 거죠.
 
휴.. 이렇게 원인을 알고 나니 더 불안해 지네요. 흐흐.

그럼 해결책은 어디에 있을까요? 알랭 드 보통은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와 같은 해결책을 제안 합니다. 하지만 책을 읽은 저는 앞부분의 '불안의 원인'을 읽으면서 벌써 어느정도는 마음이 편안해 졌습니다. 그리고 그가 제시한 해결책들도 사실상 도움이 되긴 해도 '해결'이라기 보다는 '대안'이 될것 같습니다. 선택은 독자의 몫이고 그러한 방법을 알았다고 해서 해결되어지는것도 아니죠.

보통도 이렇게 말하네요. 결국은 우리의 상상력과 의지의 문제라고요. 
 

우리가 어떤 가치를 따르는 것은 두려움을 느껴 나도 모르게 복종을 하기 때문이다. 마취를 당해 그 가치가 자연스럽다고, 어쩌면 신이 주신 것인지도 모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주위의 사람들이 거기에 노예처럼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상상력이 너무 조심스러워 대안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략)

우리는 삶에서 성공을 거두는 데는 하나 이상의 길, 판사나 약사의 길과는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위로와 확신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래 책이 눈에 뜨이더군요. 읽어볼까 말까 고민중입니다.

 고민하는 힘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 사계절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