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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조직의 재발견 - 샌드위치 위기론을 부정하면서 파고드는 조직모델 연구

★★★ -  문제 제기 및 진단까지는 훌륭하지만 그 뒤부터는 아쉬운 노작(勞作)

조직의 재발견 - 6점
우석훈 지음/개마고원

20대 젊은이들을 가리켜 '88만원 세대' 라고 정의한 우석훈 교수에 대해서는 왠만한 사람이라면 그 이름쯤은 한번 들어봤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88만원 세대' 라는 말이 가진 의미와 상징성의 위력은 대단했던 것이죠. 주장하는 내용이 우리 사회에서 흔히 진보적 내지는 좌파적이라 불리는 쪽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이 사람은 유럽에서 공부한 '안 팔리는 소장학자' 쯤 되는가 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알고보니 유럽(프랑스)에서 공부한 것 까지는 맞추었지만 그 다음부분은 틀렸습니다.  UN 기후변화협약의 정책분과 의장 등 국제기구에서 공직을 경험한 엘리트였더군요. 그냥 하던 대로 계속 살았으면 대한민국 1% 에 너끈히 들어갔을텐데 굳이 험한 길을 택한 걸 보면 보통 사람은 아닙니다.

글쓴이 개인이야 어떻든 간에 우석훈 교수의 책은 제목을 참 기가 막히게 달고 나옵니다. 한국경제대안 시리즈 4부작인 <88만원 세대>,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 <촌놈들의 제국주의>, <괴물의 탄생> 은 하나하나 그 제목이 도발적이고 눈에 확 뜨입니다. 그 중에서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 (이하 <샌드위치...>) 는 저자 스스로도 제목이 낚시라고 느꼈는지 개정판에서는 <조직의 재발견> 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일종의 학자적 양심이었을까요? <샌드위치...> 의 진짜 제목은 부제인 "조직론으로 본 한국 기업의 본질적 위기와 그 해법"  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실제로 이 책은 왜 샌드위치 위기론이 허구인지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 <샌드위치...> 가 주장하는 건 "진짜 위기는 샌드위치 상황이 아니라 그동안 통용된 우리 기업과 사회의 조직과 그 문화가 한계점에 와 있다는 것이다" 입니다(그래서 책 제목을 뒤늦게라도 바꿀 수 밖에 없었겠지요).

조직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개인이 그저 모이기만 한 것을 집단이라고 부른다면, 어느 집단 속의 구성원 들이 기능과 위상(또는 힘)에 따라 분화되고 종속적인 관계가 형성되어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움직일 때 비로소 조직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조직의 그런 속성상 두 가지 문제 - 조직과 개인 사이의 문제와 조직 속의 개인과 개인 사이의 문제 - 를 내재하고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샌드위치...> 에 따르면 조직은 대개 군대, 교회, 가족의 세 가지 원형에 의해 분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발전과정을 거치면서 유럽식 가족형 조직은 뿌리내리지 못하고 가족을 원형으로 하되 엄격한 상하관계와 구성원의 충성 및 희생을 요구하는 군대형 조직과 교회형 조직의 특성이 융합된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이 우석훈 교수의 주장입니다. 가족형 조직의 성격 탓에 권력을 세습시키려는 경향이 있고, 군대 또는 교회형 조직의 성격으로 인해 통일성을 중시하고 다양성을 억압하는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위와 같은 조직모델은 포디즘 산업구조 아래에서 그야 말로 효과적으로 기능해 왔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다는 우리나라 경제성장사(史)야말로 그걸 입증하는 최고의 사례가 아니겠어요. 문제는 '지금까지의 조직모델 덕에 여기까지 왔지만, 앞으로는 같은 방식으로 하다간 더 이상 나아가기는 커녕 주저앉게 생겼다' 라는 우려가 점점 현실화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샌드위치...> 는 문제 제기 및 진단까지는 조금 딱딱하기는 해도 면밀하게 짚어나가지만,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해야 할 시점에서 힘이 빠진 것처럼 보입니다. 계속 '앞으로 고민할 문제다' 이런 식이에요. 차라리 좀 어거지로 끌고 가는 느낌을 주더라도 ''이것이야말로 앞으로 한 세대를 이끌어갈 새로운 조직모델이다' 라고 주장해 주었으면 좋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지나치게 학자 풍의 글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초중반부는 때때로 희열을 느끼면서 읽다가도 후반부로 갈수록 진도가 잘 안 나가게 됩니다.  이 책에서 제기하고 검토하는 '한국형 조직 모델의 문제' 에 대해 읽는 사람 개개인이 곱씹으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과 앞으로 변화해야 할 모델을 생각해 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 제가 다니는 회사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요. 우리 회사는 이미 조직상으로는 수직 단계를 많이 줄였습니다. 제가 입사하기 한참 전에 사원 - 대리 - 과장 - 차장 - 부장의 서열형 부서 조직을 팀원 - 팀장으로만 구성된 팀 체제로 바꾸고 직급도 사원 - 과장 - 부장으로 단순화시켰거든요. 그러나 회사생활 7년차에 들어서서 느끼는 거지만, 조직상으로는 바뀌었으나 조직 문화는 거의 바뀌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직급 체제가 살아있다고나 할까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외형으로는 진화중인 조직 모델에 걸맞는 조직 문화가 스며들게 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