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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보석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The things they carried - 팀 오브라이언


결론부터 말하면.
훌륭한 책 + 구린 번역. 되겠다.

번역이 구리다는건 물론 조심스럽다. 원서와 하나하나 비교해본것 아니니까 증거가 없다.ㅎ
하지만 심심찮게 튀어나오는 맞춤법 오류, 문장구조 오류들 때문에 읽는 내내 전체 번역을 싸잡아 의심하며 읽을 수밖에 없게 한 죄가 있다 하겠다.
(중반 이후부터는 순간순간 집중이 안됐다. 어느새 틀린 맞춤법, 앞뒤 안맞는 문장 잡아내고 있는 나를 문득문득 발견!ㅠ)
맞춤법은 단어 단위의 얘기인데 그거 좀 틀렸다고 해서 번역이 엉망이라고 할 수 있냐.싶을지 모르나,
글쟁이라면 맞춤법 병은 '기본'으로 앓는 수순일텐데, 그걸 뛰어넘고 훌륭한 문장으로 직행할 수는 없을거란 생각에 오역을 의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거라 본다.
뭔가 자연스럽지 않은 문장이 나올때마다 내 이해력을 저주하던것에서 번역을 의심하는 쪽으로 옮아가는 찝찝함이 내내 따라다녔던거다.

군대,전쟁 전문용어들이 많긴 하지만 그다지 길지 않고 담백한 문장들로 돼있기 때문에 원서로 보는것이 심하게 힘든 책은 아닐것 같으니, 여러분들은 시도해보시기 바란다.



이 책 또한, 뭐 어쩌다 위시리스트에 처넣어논건지 기억나지 않지만. (넣기만 하고 빼질 않는게 한심해서 표현이 격해짐)
지금 보니 우.리.나.라.에.선. 꽤 숨은 걸작인가보다. (서점사이트에 별점이나 리뷰 등등이 거의 없는걸로 봐서)
인간성 상실, 제국주의 전쟁의 대표인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경험을 정말 처절하고도 심감나게 그렸다.
자신이 속했던 알파중대 대원들 개개인과 그들이 사랑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과, 자신이 죽인, 수학을 좋아했을것 같은 젊은 베트콩, 아홉살에 죽은 첫사랑 이야기로 좁혀 그것들을 통해 베트남전쟁을 고발하는..
전쟁이 왜 shit인지에 관한 친절한 예가 돼주었다. 지극히 개인적이어서 더욱 진실한.

이 책은, 단편들을 하나로 묶은건데 그 묶음 전체를 볼때 연대기적 구성이 아니라서 스펙타클하다.
전우의 죽음을 아프게 묘사한 챕터 이후에 그 전우와의 내밀한 에피소드를 묶었으니, 짠해 미치겠는거다.
이런 식으로 뒤의 단편이 앞의 어느 단편을 설명해주는 구조, 어린시절의 마을을 참혹한 전장과 뒤섞어버리거나 22살의 자신과 43살의 자신을 또 섞어버리는 식이라서 영화를 보는것 같다.

음.그런데.  내용에 몰입될수록 이 책이 소설이라는것에 더 신경이 쓰인다.
작가가 참전군인이었던건 사실이고 내용도 1인칭이며, 그리고 그게 바로 감동의 원천인데, 그런데 장르가 '소설'이라니.
물론 이런걸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지만 다른 어떤 그것들 보다도, fact의 비중이 엄청나게 중요하게 느껴지는데, 가장 비극적이었던 전쟁을 그리고 있으니 그만큼 진지해야 하는데다 무지하게 빨려들어가는 스토리이다보니 이래놓고 그부분 허구였어.한다면 가만안둬.일케 되는거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가 얼마만큼 덧칠돼 있는지를 알 수 없고, 가끔은 눈물까지 핑 돌게 되면, 부분부분 허구일 수 있다는 생각을 거부하게 된다. 나는 이 이야기들의 작은 일부라도 허구일 수 있다는 그 사실에 점점 더 예민해졌는데, 그만큼 휘말려버렸단 얘기다.

동시에.

작가는 이 '소설' 속에서
"소설 속에서 그 대목은 내가 일부러 꾸며낸 것이었다"
라고 말하기도 하고, 이 책 중엔 [소설이었다면]이나, [전쟁 이야기를 사실대로 말할 수 있을까]라는 챕터도 있으며,
"이야기는 그럴 듯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결코 본 적이 없는 것을 나는 볼 수 있다" 라거나,
캐슬린이 물을 수 있다.
"아빠, 진실을 말해주세요.누군가를 죽였지요?"
그러면 나는 정직하게 말할 수 있다.
"물론 아니란다."
또 정직하게 말할 수 있다.
"그래. 죽였단다."
라고도 말한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면, 더이상 따지고 싶지 않다.
작가는 오히려 전쟁은 이렇게 믿을 수 없는것, 자신의 경험조차도 믿을 수 없는것, 참전자들의 입을 통한 전쟁 이야기를 믿는 우리를 조심시킨다.
"전쟁 이야기를 재미있는 영웅담이나 아주 조금이라도 교훈적인 이야기라고 느낀다면 당신은 아주 낡고 무서운 거짓말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전쟁 이야기에는 진실이 없다."
그래, 차라리 허구였으면.. 하게 되는거다.
전쟁의 본 모습은 '지옥'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바로 이런 허구같은 것일테다. 경험하지 못한 사람의 '판단' 자체가 오만일것이다.


징집 통지를 받고, 이 명분없는 전쟁에 나서야 하는 22살 청년의 고통을 그린 대목에서(실제로 캐나다 국경으로 도망을 간다) 어찌나 실감이 나던지, 지금 군복무중인 죄없는 우리나라 군인들을 보는듯해서 정말 가슴아팠다.
"나는 법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당신들이 전쟁을 지지한다면 당신들이 그 가치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좋다.
그러나 당신들은 이 경우 당신들의 소중한 피를 대납해야 한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아내, 아이들,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 데리고 전장으로 가야한다. 그게 법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은 소수이고, 그리고 전쟁터엔 그들은 없다.



+ 가장 절절했던 에피소드
챕터별 주인공(흠 너무 소설적으로 말하니 미안함ㅠ) 중에, 여자친구로 전장에 헬기를 얻어타고 위문 왔다가 전쟁의 광기에 빨려들어 망가져버린 매리 앤의 이야기는 아..정말이지..
커츠 대령을 딱 떠올리는 이 섬찟한 이야기는 사실이어야 하고 동시에 허구여야 했다.
킬고어 같은 인물도 하나 나오고, 참 여러모로 지옥의 묵시록과 겹친다.


+ 맞춤법 교정
(63p) 강아지에게 플라스틱 수저로 밥을 먹이고.. (수저→숟가락) 숟가락으로 밥주고 젓가락으로 반찬줬니?아놔;;
(116p) 주파수가 틀려. (틀려→달라)
(139p) 분위기를 띠우기 위해 (띠우기→띄우기)
(168p) 장담하건데→장담하건대
(206p) 갈 곳이 없었음으로 →없었으므로
(288p) 나는 눈에 띠지 않는 →띄지
더는 없었음 싶네;;;

+ 어색한 문장
(36p) 순전히 가볍고 편안함을 위해서 그들은 비상식량을 던져버리고...
(91p) 아마도 이제 당신은 왜 내가 전에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95p) 우리의 삶을 완벽한 침묵으로 지켜보면서 선택을 하게 하기도 하고 실패를 하게 하기도 하는 것처럼. (틀리지 않았지만, 지나치게 정확;;; '선택을 하게도 하고' 정도가 나을듯)
(202p) 그가 해야 할 것은 샐리의 집 앞에서 멈추고 그의 새로운 시간 계측법으로 그녀를 감동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것 외에도 틀리진 않았지만 아름답지(?) 못한 문장들이 꽤 있음;;;


- by angryinch  http://hedwig.kr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 8점
팀 오브라이언 지음, 김준태 옮김/한얼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