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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감동 해야만 한다 <허삼관 매혈기>


아 어떡하지;;;;;
음. 일단. 암튼..


이 작품은, 문화혁명기 중국을 배경으로 피를 팔아 살아가는 가장 ‘허삼관’의 이야기다.
이 말 하나만으로도 뭔가 뜨거운것이 올라올 만하다.
단 몇작품으로 세계가 사랑하는 중국의 대표 작가가 되었다는 ‘위화’의 작품.

가족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아버지의 모습, 가족에게 닥치는 고비들을 그때그때 큰 돈과 바꿀 수 있는 ‘매혈’로 버텨가는 가난한 아버지의 이야기.
이 아버지는 피를 팔기 전 양을 불리기 위해 차가운 얼음물이라도 몇 대접씩 배가 터지도록 마시고(과학적으로 따지진 말자),
피를 팔고나서야 겨우 돼지간과 황주 두냥을 먹을 자격을 스스로에게 주는 사람이다.

허삼관은 거친 입으로 내내 육두문자를 내뱉지만 언제나 그건 말에 그칠 뿐 마음은 더없이 여린 남자이며, 세 아들 중 자기 자식이 아니란게 밝혀진 장남을 위해서까지 목숨을 걸고 피를 파는 사람이며, 가족끼리도 비판투쟁대회를 열어야했던 그 시절 어머니의 부정을 부끄러워하며 비판하는 자식들에게 자신의 부정을 스스로 드러냄으로써 아내를 보호하는 남편의 모습까지 보여준다.



그런데, 작가는 이 ‘허삼관’을 흠결없이 존경할 만한 어쩌면 비현실적인 아버지의 모습으로 그리지만은 않는다.
그는 장남 일락이가 자기의 자식이 아님을 알고 피를 팔아 가족에게 국수를 먹이러 가는 길에 일락이만 버리기도 하고, 바람 피운걸 덮기 위해서도 피를 팔며, 두 아들에게 자라서 장남의 친아버지네 두 딸을 강간해버리라는 말도 하는 등, 비루한 모습도 함께 가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하나로 그리는 것이다.


줄거리만 보면 더이상 신파적일수가 없는데 이 모든 가슴절절한 이야기들을 심각하지 않게 해학적으로 표현해내는 위화의 스타일은, 우리에게 희극적으로 표현된 비극이야말로 가장 진한 눈물을 남길 수 있음을 일깨운다.

피는 극단적이다. ‘매혈’은 그 어떤것 보다도 극적인 소재가 된다.
몸이 아픈 장남 일락이를 위해, 한번 매혈 후엔 적어도 석달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규칙따윈 무시한채 도시를 옮겨다니며 피를 파는 모습은 부모의 위대함을 단숨에 대변해버린다.
허삼관은 자신의 피를 죽은피라며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노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피를 팔러 간다.
이 마지막 장면은 이 소설의 마무리로 성공적이다.


이상. 여기까지가 이책을 읽는동안 머리로 이해하여 스스로에게 강요한 감상이다.

이런 감상으로 감동하여 그 시절 중국을 상상해보고 내 아버지를 생각해보고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등등. 그래야 한다는걸 머리론 알겠다.

그런데.
한마디로 이 책이 정말 재미없었다.
몇시간에 끝냈으니 진도는 정말 빠른데 짜증이 많이 났다.
솔직하게 말해, 감동도 거의 없었다. 허삼관의, 문자 그대로 피나게 고단한 삶에서 연민과 감동을 느껴야 하는거라면, 내 아버지도 그 정도의 고단한 삶은 사신 분이라고 말하겠다.

말했듯이, 피는 극단적이라 이 소설의 제목만으로 구매욕을 당기는 충분한 역할을 한다.
허삼관이 판 것이 피가 아니었다면 그 외엔 남아있을게 없다. 스토리는 취향이 아니지만 필력이 훌륭하다던가 이루는 에피소드는 마음에 안들지만 전체적으론 큰 메시지를 남긴다던가 말이다.

중국 사람들을 그린 작품들 특유의 시끌벅적한 스타일이 내겐 정말 맞지 않고, 이 작가의 작품이 처음이라 싸잡아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사람의 글을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해학적이라고 하는데, 그런 해학을 전혀 느끼지 못했고(휴머니즘은 약간 느꼈음ㅋ) 유머는 유치했으며 (아니, 세 아들의 이름이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라는것에까지 폭소를 터뜨려야 한다고 강요한다) 표현력에서도 세계적인 글쟁이의 힘은 (중국어를 마스터해 원문으로 읽지 않는 이상)전혀 느낄 수 없었다.
(건방지게도, 나도 소설 써야겠다!는 용기를 얻기까지 했다능;;;)


이럴때 참 혼란스럽다.
하나같이 감동받았으며 울다웃다를 반복했다는 감상들 뿐인데, 내겐 무슨 문제가 있는걸까?하하하;;;

허삼관 매혈기, 제목 참 훌륭하고 표지도 예쁘다.
이 책 읽으면서 짜증이 왕창 났다는 사람을 만나 돼지간을 안주삼아 황주를 마시고 싶다.


+ 장이모의 <인생>이 이 작가의 전작을 원작으로 했단다. 허삼관 매혈기도 영화로 만든다면 연출자의 역량에 따라 이 텍스트와는 크게 다를 수 있겠다는 느낌은 든다.


by angryinch    www.hedwig.kr


 

허삼관 매혈기 - 2점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푸른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