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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촛불의 배후가 궁금하다면!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Here Comes Everybody>



회사가 강제로 읽힌 책인데도, 독후감을 쓰고싶을 만큼 훌륭하다.
이게 얼마나 좋았단 의미인진 스스로도 모르겠네ㅋ 하여간 당분간은 일에 관련된 책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거든.

예고도 없이 받아들다보니 대체 어떤 장르인지 저자는 어떤 사람인지 뭘 말하려는 책인지 전혀 모른채였다.
(내가 직접 책을 고를때도 남의 서평을 여러개 읽어보거나 별점에  꽂히거나 하진 않지만) 이렇게 완전네버전혀 모른채 무작정 뛰어드는 경우가 두세번은 있었는데 이런식으로 책을 시작하는 마음도 매번 꽤 설레고 흥미로웠다.

<아웃라이어>처럼, 이 책도 제목만으론 도무지 짐작이 안되는 책이라, 조금씩 느낌이 오는데까지 오래걸렸다;;
(번역판 제목을 참 잘 지은것 같다)
소제목이 아주 짧게짧게 돼있는데, 그 단락단락이 재미있지만 전체적으론 뭔 소릴 하려는 책인지 파악이 안됐다고할까. 뭐 대략 20장은 넘어서야 조금씩 감이 왔을 정도다.


책의 내용을 이딴식으로 압축하는걸 안좋아하고 어려워하지만, 뭐 간단히 표현해보자면.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지, 예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대중행동들이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는지, 그 속에서 소셜 도구들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우리가 아는 풍부한 실례를 들어 얘기하는 책이다.


주로, 마케팅이나 심리학 책을 두고 '이 책 좋다, 맘에든다'라고 말하게 되는건,
- 내가 몰랐던 사실을 새로 알려주는 경우.라기 보다는
- 생각해보면 나도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었지만 설명할 수 없이 뒤죽박죽이던 것을 깔끔히 정돈된 이론으로 '표현'해줄 때.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역시 '훌륭하다, 재밌다, 좋다'라고 말하게 되는것도 이런 이유인것 같다.

위키피디아, 플리커, 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 등등의 '소셜 도구'들을 나도 사용하고 있고, 당연히 그 사용법과 작동원리를 알고 있으며, 어떤식으로 네트워킹 되는지, 무슨 생각으로 만들었는지도 대략 아는것 같고, 이런 도구들이 새로운 역할을 하여 세계적으로 대단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또, 대부분의 블로거들이 블로그질을 하는 중에 스치듯이라도 이런 생각을 해봤을거다.
- 블로그는 과연 일기장인가 미디어인가.
- 같은 주제를 비슷한 수준(?)으로 얘기하고 있을 때, 언론사에 속해있는 블로거와 백수 블로거의 차이는 무엇인가.
- 이런 도구들이 널린 세상에서 '기자'의 기준은 무엇인가, 설마 언론사의 4대보험? 그건 너무 웃기쟎아.
-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기준은 무엇인가.
- 지금 이 독후감도 맨 밑에 바이라인만 넣으면 기자가 쓴것 같지 않아?  (건 아니라고?ㅋ)

그리고 트위터류를 쓰면서도.
- 이게 진정 소셜 도구의 미덕이라고들 하는 '양방향' 맞아?
- 유명인들이 맞팔 해주는게 과연 진정한 소통의 의지야? 아님 오히려 모든이를 무시하겠단거야?
등등.

이런 얘기들을 체계적으로 하는데, 머리속이 막 수납&분리수거되는 느낌이다. 후련해진다. (물론 뭐라고 정답을 얘기하진 않는다. 정답이 없으니까.)
특히 위키피디아의 탄생 얘기에 정말 소름이 쪽쪽 돋는데, (그리고 리눅스 얘기!)
'위키피디아는 누구나 쓰고 수정하고 삭제까지도 할 수 있는 소셜 백과사전이다.'라는 정의을 알았을때 '음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인간 본성은 악인데(!!) 제대로 된 정보가 쌓일 수 있을까? 엉터리 자료를 올리거나 삭제해버리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아주 잠깐은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오늘날 나부터도 하루에 열댓번은 위키피디아 검색결과를 믿고!활용하고 있는데다, 보아하니 이게 어쩜 이리도 잘 돌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신기하기가 우주에 닿을정도인데 이 책이 납득시켜준다.

하여간 허섭하나마 웹기획자로서, 또한번 좌절의 순간.
위키피디아는 그 속에 구현된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이건 온전히 인간 심리를 다루는 문제이며, 그걸 파악한 지미 웨일스와 래리 생거는 진정한 천재로군.
'기획'하라면 UI나 고민하고 앉은 나는 언제나 이런 고도의 인간심리조종술이 투영된, 이렇게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도구를 만들 수 있을까.하는 처절한 자괴감ㅠ


주옥같은 문장들이 곳곳에 있는데 짧게 잘라낼 수 있는 몇개 발췌.

우리는 대개 조직이 조율되지 않은 그룹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여긴다. 조직이 직원들을 감독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드러난 상황으로 보면 느슨한 관계로 맺어진 그룹이 그 어떤 조직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일을 완수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도서관 사서나 프로그램 편성자처럼 희소성 때문에 생긴 업종인 경우, 그 희소성이 사라졌을 때 그것을 가장 늦게 깨닫는 사람도 바로 그 전문가들 자신이다. 이들은 자신이 경쟁에 직면해 있음을 깨닫는 순간, 퇴출을 앞두고 있음을 알게 되곤 한다.

전문가의 자아 개념과 자기 방어는 평상시에는 유용하지만, 혁명의 시대에는 단점이 된다. 전문가로서의 자기 직업에 닥친 위협만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런 위협은 사회에 대한 위협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방대한 양의 개인적인 글, 자기들끼리만 재미있어 하는 사진, 조악한 동영상 등을 보다보면, 옛날 희소성의 세계가 단점은 좀 있었을지 몰라도 최악의 아마추어 작품들은 안볼 수 있도록 해준 게 고맙다고 생각하기 쉽다. 쓰레기를 배터지게 먹으나 쫄쫄 굶으나 괴롭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명성'이란 태도의 문제도 아니고 기술이 남긴 유물도 아니다. 명성이란 들어오는 관심과 나가는 관심 간의 불균형에 불과하다. (중략) 오프라의 메일 주소는 공개되는 즉시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다. 유명인들은 이런 사회적 제약으로 인해 양방향 매체일 때도 일방적 패턴을 따를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는 작은 일은 사랑 때문에, 큰 일은 돈 때문에 이뤄지는 세계였다. 사랑은 사람들에게 빵을 구울 동기를, 돈은 사전을 만들 동기를 부여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랑 때문에도 큰 일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기술이 평범해지고, 그 다음엔 사방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해지고, 마지막으로 너무 깊숙이 퍼져 있어 눈에 안 보일 정도가 돼야 비로소 심오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선호하는 공평함에는 합리적인 면보다는 감정적인 면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이는 비금전적 동기에 의존하면 다양한 수준의 참여가 이루어지는 더 관용적인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패를 정상으로 받아들이는 서비스들은 노력의 대부분을 성공시키려 애쓰는 조직들은 근처에도 가지못할 가치를 창출해 낸다.

일반인에게는 위키피디아가 참고문헌을 만드는 작업처럼 보이지만, 실은 논쟁을 주요 용도로 하고 있다. 위키피디아에 있는 글들은 그 논쟁의 잔재로, 더 이상 아무도 이견을 내지 않게 된 결과물인 것이다.

조금이라도 중요한 실험이라면, 그 실험이 실패하길 바라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유저들에 대한 방어막을 갖춘 시스템만이 살아남아 번성할 수 있다.

이야~~~~~ 전문가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_-


암튼, 냉정해서 매력적인 책, 앞으로 살 날이 20년 이상 남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다.
끝! 


ps.
제목으로 붙인 "촛불의 배후가 궁금하다면!" 은, 진짜로 내가 생각해서 붙인 제목임을 밝힌다ㅋ 왜냐면.
책 앞뒤 표지에 무슨 글자들이 빽빽한데, 일부러 읽지 않고 시작했고. 이제서야 뒷표지를 보니 많은 언론사들의 짧은 서평이 꽉 있는데, 그 중에 오마이뉴스가 써논 서평과 겹치더라. 진짜 놀랐음!
"촛불의 배후를 못내 궁금해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권해 주고 싶은 책이다. - <오마이뉴스>"

정말 포인트를 가장 잘 잡은 단평이다.
이 책을 읽고나니, 이명박은, 배후가 있지 않고서는 대중들의 그런 집단행동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고 진정으로 믿을것 같기도 하다. 누가 좀 보내줘봐. 이론으로 알게된다해서 느끼는바가 있을랑가 모르겠다마는.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 8점
클레이 서키 지음, 송연석 옮김/갤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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