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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표류하기 때문에 청춘이라 부른다

다치바나 타카시라고 하면 책을 읽고 보관하기 위한 건물을 따로 갖고 있을 정도로 엄청난 독서광이며 '지식의 거인' 이라고 불릴 정도로 널리 알려진 명사입니다.

(얼마전 '지식의 괴물' 이라는 별명을 가진 또 한 사람의 지식인인 사토 마사루와의 대담을 엮은 책이 나왔길래 사서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만... 두사람이 늘어놓는 추천도서들을 보며 머리가 아득해질 정도였습니다. 제가 읽어본 책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한 권 한 권이 그리 만만한 책이 아니었거든요. '이정도는 읽어야 책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건가' 하고 암담해지더군요.)

그 다치바나 타카시가 11명의 20~30대 젊은이를 인터뷰해 '청춘표류' 라는 이름으로 엮은 책이 있는걸 뒤늦게 알고는 바로 집어왔습니다. 태어나서 이제껏 그냥저냥 평범하게 살아왔다는 일종의 컴플렉스가 있는 저로서는 '지식의 거인이 인터뷰한 젊은이들은 과연 어떨까' 라는게 너무나 궁금했거든요. 

청춘표류 - 10점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연정 옮김/예문

'청춘표류' 에서 다치바나와 이야기를 나눈 열 한 사람의 이름과 직업은 아래와 같습니다.

  • 이나모토 유타카 (칠기 장인)
  • 후루카와 시로 (나이프 제작자)
  • 무라사키 타로 (원숭이 조련사)
  • 모리야스 츠네요시 (정육 기술사)
  • 미야자키 마나부 (사진작가)
  • 나가사와 요시아키 (자전거 프레임 빌더)
  • 마츠바라 히데토시 (수할치: 매를 키워 매사냥을 하는 사람)
  • 다사키 신야 (소믈리에)
  • 사이스 마사오 (프랑스 요리사)
  • 도미타 준 (염직가)
  • 요시노 긴지 (레코딩 엔지니어)

직업만 봐도 알겠지만 평범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읽다가 기가 막혀서 '아니 그럼 청소년기에는 문제아로 학교에서 버림받아 일찍부터 사회를 겪고 안해본 일이 없다가 자기 하고 싶은 일을 찾고는 다시 죽을 만큼 고생을 해보라는 얘기가 하고싶은 건가?' 하고 책을 던져버리고 싶었습니다 (사실은 워낙 흥미진진한 경험담이었길래 던져버리는 건 고사하고 눈길을 떼지도 못했습니다만...)

하지만 '청춘표류' 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난 이렇게 해서 성공했다' 식의 무용담과는 사뭇 다릅니다. 인터뷰이 중에는 많은 수입을 올리고 명성을 얻은 사람도 있지만, '저렇게 사는 것도 가능해?' 싶을 정도도 고달픈 삶을 사는 사람도 있었거든요. 옆에서 듣는 사람이야 '와 참 흥미진진해요.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그 모습 정말 멋지군요' 라고 듣기 좋은 소리 한번 해주면 될일이지만 당사자야 어디 그렇나요. 앞에 놓인 가시밭길이 훤히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황의 시기를 거쳐 자기가 하고 싶은,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찾은 사람들이기에 세상의 잣대로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싶어집니다.

'청춘표류' 는 자기가 선택한 자기 인생을 밀고나가는 20 ~ 30 대 젊은이들의 현재진행형을 가감없이 다루고 있습니다. 목적지를 알 수 없는 항해. 제목처럼 표류에 가까운 여정입니다. 일생을 마칠 때까지 망망대해를 방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폭풍우를 만나 사력을 다하지만 끝내 견디지 못하고 침몰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수백년전 대항해시대에 바다에서 스러져간 위대한 항해자들을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까?

p.s. 다치바나 타카시는 이 책을 1998년에 펴냈습니다. 지금은 30대 중반 ~ 4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을 그 때 그 젊은이들의 지금 모습은 어떨지 너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