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다 보니 출근하는 평일에는 주로 회사 근처에서 사먹고, 주말에는 그냥 집 주위에 있는 음식점에 들어가거나 라면을 끓여 때우는 일이 잦습니다. 이따금씩은 큰 맘 먹고 이마트에 가서 반제품 상태의 재료를 사서 집에서 조리하기도 합니다. 어느날 손질 다 되어 있는 은대구살을 프라이팬에 지지다가 '아 정말 세상 편해졌네, 만일 옛날이었으면 내가 직접 (배를 타고 나가 생선을 낚아올리고) 비늘을 벗기고 피를 빼고 내장을 빼내고 포를 뜨는 작업을 해야만 했겠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동안 그런 생각에 빠져 있다가 만화책을 사러 들른 서점에서 발견한 게 바로 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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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1 - ![]()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희정 옮김/세미콜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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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2 - ![]()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희정 옮김/세미콜론 |
일본 토호쿠 지방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홋카이도와 가까운 혼슈의 북쪽 산간 지역 같습니다) 의 작은 마을 코모리를 배경으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치코라는 여주인공이 직접 밭을 매고 작물을 거둬 자급자족하는 생활 모습을 하나하나 묘사하는 만화입니다. 아래 목차만 봐도 먹거리 이름이 하나하나 나열되어 있을 뿐입니다.
한 회 한 회 마다 어떤 음식을 만드는 법을 비교적 자세히 설명합니다. 하지만 <리틀 포레스트>를 요리만화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등장하는 모든 음식과 그 만드는 법이 주인공의 일상 생활속에 녹아들어가 '시골에서 자급자족하는 삶' 의 일부로서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읽다보면 '그래, 원래 먹는다는 것은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자주 머리를 스치게 됩니다.
먹는 것을 꽤나 좋아해서 엥겔계수가 도시 빈민층에 맞먹을 정도의 생활을 자랑(?)하는 형편이지만, 식도락 블로그에서 흔히 보는 '먹어 준다' 는 표현에는 상당히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한 '먹는다' 를 넘어서 무언가 적극적이기도 하고 즐긴다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나온 표현인 것은 이해한다 쳐도 '~해 준다' 표현 자체에 사람의 오만함이 그대로 들어가 있는 것 같아서입니다. <리틀 포레스트> 에 나오는 그 어떤 음식도 감히 '먹어 준다' 라고는 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생활의 일부로서, 삶의 일부로서의 먹는다는 행위에 '~해 준다' 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으니까요 (그렇다고 식도락을 좋게 보지 않는다고 오해하지는 마세요. 저부터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맛있는 것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니까요).
이 작품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일상의 묘사 속에서 언뜻 언뜻 드러나는 숨겨진 이야기가 제대로 드러나기 전에 끝나버린다는 것입니다. 왜 20대 초반의 아가씨가 시골 산간 지역에서 혼자 살게 되었는지, 어느 날 집을 나가버린 엄마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등등 흥미롭게 발전할 수 있는 요소가 얼마든지 있었거든요. 원래 작가인 이가라시 다이스케 五十嵐大介 짧은 중단편 위주로 작품을 발표하는 만화가인 탓도 있었겠지만 여러 모로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결말도 뜬금없이 서둘러 맺어버린 것 같아요. 그래서 1권은 별 네 개를 줬지만, 2권의 아쉬움 때문에 별을 하나 깎았습니다.
도시에서 자라난 사람은 시골을 동경하기는 해도 결코 시골에서 살 수는 없다고 합니다. 큰 맘 먹고 시도해봤자 한달도 채 못 버틴다고 하더군요. 저만 해도 매일매일 농사짓고 가축 돌보고 그렇게는 못 살 거 같아요. 이제 와서 그렇게 살 수는 없겠지만 산다는 게 무엇인지, 먹는다는 게 무엇인지 소박하게 묘사하여 돌아볼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리틀 포레스트> 의 신선함이 돋보인다고 생각합니다.
※ 도호쿠 東北 지방 산간 마을이 어딘지 궁금해서 찾아봤지만 아무래도 모르겠더군요. 아무래도 혼슈 本州 최북단의 아오모리 靑森 나 아키타 秋田, 이와테 岩手 현 정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홋카이도 바로 아래, 혼슈 최북단의 3개 지역이 바로 아오모리 靑森, 아키타 秋田, 이와테 岩手 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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