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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개를 키우는 당신, 개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개가 사람에게 충성스럽고 순종적이고 용감해 보이는 것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증거는 없다.
참 몬땐 개들도 많은데 우린 그 몇몇이 치료받아야 할 개체라고 생각하지 개라는 종 자체는 원래가 사랑 가득한 존재인걸로 인식하곤 한다. 이 무슨 인간중심 오만방자란 말인가?

그들은 오금을 저리게 하는 외모와 애교를 무기로 인간을 이용한다.
개에게 '반려'라는 수식을 붙이는게 더욱 '인간적'인 지금, 개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들이 정말 도둑으로부터 집을 보호하는가? 주인이 외출해버린 집에 혼자 남아 외로움에 빡이돌아 끊임없이 짖어대다가도 정작 도둑이 들었을땐 쏘세지 하나에 배를 깔거나 쿨쿨 자버리는 개가 수두룩하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훈련되어 본능이 거세된 채 여러 분야에 활용되고 있는 경우는 말고 말이다.)



개는 심지어 꾀병도 부린다. 어떡하면 주인이 맛있는 먹이를 가져다줄지를 알고 다리를 절거나 하반신 마비라도 온것 같은 연기까지 하는 놈들이다.
미국에서 매년 개한테 심하게 물려 치료받는 인간이 100만명이다. 몸무게 1kg당 먹어치우는 먹이는 인간의 두배다. 미국에 사는 개들이 1년간 싸대는 오줌은 150억 리터인데 미국,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전체의 포도주 생산량보다 많다!
대부분의 사고는 떠돌이 개가 아니라 애완견에 의해 일어나는데도 인간은 애완견이 훨씬 온순하다고 멋대로 믿는다.
또 우린, 이기적인 인간과는 달리 개는 인간을 경제력이나 외모 따위로 판단해 사랑을 조절하지 않는다는점을 고귀한 성품으로 규정하고는 개를 마음껏 아껴도 되는 명분으로 삼을때가 많다. 그런데 그것을 메리쎄리쫑의 나에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이라 결론내리고 고마워하는게 맞나? 그들은 부자나 빈자를 가리지 않고 이용하고 주머니를 터는 것일뿐이다.

... 어쩜. 이쯤되면..(해보자는거지요? 아 노통..그리워요..) 이 정도의 비용을 발생시키는 저 피조물들은...
우리의 감상적인 면을 완전히 배제할 수만 있다면, 개는 "사회적 기생동물"로 분류되어야 함이 틀림없다!


이런 등등의 나쁜점에 더해, 이상한 점 또한 많다.

① 인간이 이토록 개를 사랑하면서도 왜 인간이하의 인간들을 욕할때 '개'를 사용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본적 없나. (개보다 못한넘;; 개자식..개고생, 개같은 내인생..)
이게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개"라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어떤 문화권에서건 나쁜 뜻으로 사용돼왔다.
② '개'라는 종이 가진 외모의 어떤 요소가 '개'라고 규정짓게 하는가.
개의 생김은 종류별로 천차만별이다. 그런데도 우리같은 생물학적 지식이 전혀없는 사람들도 미니핀과 세인트 버나드를 둘다 '개'라고 판단하는건 왜일까?
처음보는 견종을 우리앞에 데려와도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우리만의 기준으로 판단해서 "이 동물은 뭔가요?"가 아니라 "이 개는 무슨 종류인가요?" 라고 할거란게 너무나 신기하다.
또 더 있다.
③ 태어난지 이틀 된 새끼 개의 외모가 성견의 축소판인가? 그렇지 않아요.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다른 동물들은 거의 축소판이다. 인간도 그렇고 고슴도치도 그렇고. 그런데 개는 자라면서 완전히 변한다. 왜일까. 흠;;

하여간 나쁘고 이상한것들.....




그런데..............





그런데 개가 인류에게 미치는 이 모든 생물학적,사회과학적 불합리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를 사랑한다.
그것도 너무너무 많이.
나를 조종하건 말건 그들을 관찰하고 쌍방교류(라고 믿게끔 연기하는것일지라도)한다는 착각만으로도, 밀가루쏘세지만한 똥도 치울 수 있고 침을 줄줄 흘리는 입속에 손을 넣어 생선가시를 꺼낼수도 있고 새끼 낳은 질펀한 현장을 맨손으로 정리할 수 있는 충분한 보상이 된다.
개들이 스스로 원해서 늑대이길 포기하고 인간에 기생해 이용해먹으며 살기로 선택했음에 동의하지만, 그래도 개는 비용에 비해 훨씬 큰 기쁨을 주는 희한한 짐승이다.


개를 좋아하는데다 표지도 예쁘고 너무나 정직한 제목도 마음에 들어 산 <개에 대하여>.
<개에 대하여>는 개에 관한 객관적 사실을 담은 아주 '과학적'인 책이지만, 마지막장을 덮으면서는 저자인 스티븐 부디안스키 박사할아버지에게 과학으로 설명키 힘든 단어의 대표인 '사랑'과 존경을 보내게 되는 책이다. 동물을 얼마나 깊고도 체계적(?!!!)으로 사랑하는 분인지 느낄 수 있다.
정말이지 개에 대한 모든것이 다 있다고 보면된다. 이 야릇한 피조물을 차가운 머리로 바라본 객관적 사실들에 뜨거운 가슴으로 느끼는 멜랑꼬리한 감상들을 적절히 섞어놓았다.
요란하게 짖어제끼는 놈을 어떻게 훈련시키면 되는지, 여기에 오줌을 싸는 놈이 저기에 싸게 하려면 어떡해야 하는지 따위의 '문제견'을 훈련시키는 방법도 당연히 있다. 하지만 이것들조차 '개 사용 매뉴얼'식이 아니라 개들을 완전히 이해하고 한수 위에서 내려다보며 말한단 느낌이 든다.

개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실제로 키우는 세상의 모든 개주인에게 권한다. 그들과 '반려'가 되려면 적어도 이만큼은 그들을 알고 이해해야 한다.
나는 개를 너무 좋아해서 한뙈기 마당도 없는 이 집에선 키우지 않는다. 그들이 인간세상에 거의 적응한듯 보여도 미끈미끈한 장판바닥을 뛰면서 굳은살 없는 분홍색 발바닥을 유지하고 싶어할거라곤 생각지 않는다. 귀를 분홍색으로 염색하거나 리본삔을 꽃거나 양말을 신는걸 좋아할것 같지도 않다. 목청을 떼내는 수술은 말할것도 없다.

마지막에 이르면 정말 감동에 겨워 책을 덮게 된다.
인간들의 이기심때문에 오랜세월 지속돼온 "순종 혈통"을 유지하기 위한 동종번식.. 그것이 야기한 수많은 유전적 결함과 질병과 기형..
인간이 멋대로 규정지은 기준에 따라 멋진 외모의 개를 만드는데만 치중해온 과거, 온갖 뼈대있는견 경진대회들과 순종견 족보.. 그것을 좇는 동안 상대적으로 천대받은 이른바 '똥개'들.
이 책의 마지막은 우리 주위를 돌아다니는 똥개들에 대한 죄책감을 선사한다. 그들이 정말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마지막 페이지의 이 구절을 그대로 베끼지 않을 수 없다.


순종을 고집하는 번식 전문가들 때문에 화가 나서 못견디겠다면 똥개들을 생각하고 마음을 가라앉히자. 주변에서 늘 보는 그런 똥개들 말이다. 신우생주의자들의 박멸 노력에도 불구하고 똥개는 여전히 개 유전자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팔팔한 생명체들이다. 주인은 없어도 인간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살아가는 개들이 전 세계에 몇 백만 마리는 된다.
게다가 잡종 강세 현상 덕분에 아주 건강하다. 대개는 성격도 좋다. 이들이야말로 진화의 전통을 잇는 '진정한 개'인지 모른다.
인간과 같이 진화했고 인간 사회를 근거지로 삼았으며 자기 멋대로 규칙을 만들어 인간에게 강요했던 바로 그 동물 말이다. 인간의 바람을 가볍게 무시하고 오로지 고대로부터 이어온 진화 법칙에만 충실한, 그리하여 괴상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와 공존하는 능력을 익혀 온 동물이 바로 개다.
최악의 경우에는 이 똥개들이 상황을 바로잡을 것이다. 지난 10만년 중 9만 9900년 동안 그 선조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ps.
얼마전 산으로 둘러싸인 고향집 동네 어귀에서, 산에 부닥쳐 메아리로 되돌아오는 자신의 목소리에 놀라 끝없이 짖어대며 갈수록 흥분하던 스파니엘잡종 한마리가 생각난다.
새끼 낳은 티 팍팍 내는 젖을 늘어뜨리곤 출렁출렁 흔들어가면서 눈을 희번덕 디벼가지곤 메아리와 주고받기를 계속하는게.. 참 어찌나 웃기던지;;
이 책을 읽기전에 이런놈은 그냥 무작정 웃기고 귀여운 놈이었으나 이젠 그 사랑스러운 느낌에다 '역시 저 짐승에게 사회적 역할을 기대하긴 힘들어..'가 더해졌다.


아 소름끼치게 사랑스러운것들!


개에 대하여 - 8점
스티븐 부디안스키 지음, 이상원 옮김/사이언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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