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양준철 , 현재 방년 23세, 현역 산업기능요원으로 복역 중입니다. 블로그스피어에서는 '널위한약속' 또는 'promise4u' 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주소는 http://rayx.in 입니다
어렸을 때 부터 PC통신을 통해서 만난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또 많은 배움을 얻었기에 제가 동료들 또는 후배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의미 잇는 일을 찾았고 평소 좋아하는 책과 관련되서 좋은 기회가 생기게 되어서 'BookStyle'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 북스타일에서 사용하는 '레이' 라는 이름은 어렸을 때 부터 존경해왔던 해커 '에릭 레이몬드' 의 이름에서 일부를 따온 것으로 그의 정신과 실력을 닮고 싶고 '성당과 시장' 을 통해서 그가 세계의 해커들과 개발자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 처럼 저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자 사용하게 된 필명 입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배우는 마음으로 열심히 임하고 노력하겠습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2007년 12월 1일
BookStyle을 시작하며 레이가.
@ 여기 까지가 공식적이자 간략하게 정리해본 저의 소개이고, 저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은 '계속 읽기'를 통해서 조금은 긴 버전의 소개를 보실 수 있습니다.
'BookStyle'을 많은 분들이 읽어 주시기를 바라며, 이 소개 글을 통해서 제가 많이 도움 받았던 분들을 다시 만나게 되어 보답할 수 있기를 빌며 저의 지난 이야기들을 적어 봅니다.
컴퓨터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
의정부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7살때 처음 MSX-II라는 기계를 접하게 되면서 컴퓨터에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해에
우연히 모델 기준으로 '80286'에 해당하는 AT를 얻게 되면서 처음 PC통신 이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고, 초등학교 3학년
때 다니던 국민학교가 정보화 시범 사업에 선정되면서 의무 가입하게 된 '천리안'을 시작하면서 온라인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스승이 되었던 하나의 잡지 '마이컴'
그 당시 저에게 스승이 되었던 것은 '마이컴' 이라는 잡지였습니다. H/W , S/W 에 대한 트렌드 외에도 칼럼이나 강좌들이
많았고 무엇보다도 부록이 아주 좋은 잡지였기 때문에 매달 특정한 날에 서점에 들어서면 서점 주인께서 바로 첫 번째 마이컴을
챙겨주시곤 하셨었죠 ^^
MINIX, 리눅스, 알짜 레드햇, 적수
저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리눅스' 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였습니다. 그 당시 '적수'로 잘 알려져
있던 김병찬 님이 'MINIX'라는 DOS에서 메모리에 상주시켜서 띄우는 유닉스에 대해서 리뷰 하셨고, 친구와 함께
MINIX에서 X-WINDOWS를 실행하는 것을 성공한 뒤 슬랙웨어를 거쳐서 알짜 레드햇을 설치하여 '세연' 이라는
X-WINDOWS 상에서 작동하는 통신 프로그램과 XRZSZ라는 GUI Z-MODEM 다운로드 프로그램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었습니다.
추억의 사설BBS를 아시나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시절에는 '천리안' 이나 '하이텔' 보다도 KETEL 이나 KITEL 등 사설BBS가 한창 부흥이었던
시기로 알고 있습니다. 인천 연수동에서는 어느 목회자 분께서 사설BBS를 운영하시기도 했었죠- 그렇게 여러 사설BBS를
전전긍긍하다가 전화비가 26만원이 나와서 어머니로부터 맞아 죽을 뻔 했었으나 '배움을 위한 돈은 아끼지 않는다' 라는 아버지의
가치관 덕분에 무사히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몇 차례 10만원을 넘기는 전화요금과 어머니의 잔소리를 이기지 못해서 여러 가지 궁리를 하던 중 '내가 가지 말고,
그들이 오게 하자' 라는 생각에 '호스트 동호회'에 가입해서 '등대' 라는 호스트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ANSI를 연구하여 한
동안 운영을 하게 되었으나 몇 달 째 새벽시간에 울리는 '띠디디디 비비비비 지이이이잉' 이라는 소리와 핸드폰이 없던 시절
때때로 낮에 전화를 걸었는데 아들이 받는게 아니라 모뎀이 받는 다는 것에 화나신 어머니로 인해서 결국에는 사설BBS 운영을
접게 되었습니다.
SLIP , WWW , NCSA MOSAIC, NETSCAPE, PLAYBOY, LINUX
초등학교 6학년, 그렇게 한차례 사설BBS 붐에서 떨어져 나와서는 사설 BBS 운영을 접고 나니 마땅히 할 일도 없고 무언가
흥미로운 것이 없을까 하다가 잡지에서 '인터넷'과 'WWW'라는 것을 접하게 되면서 천리안에서 운영하던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통해 데이콤 윈속과 NCSA 모자익과 함께 처음 WWW에 접속하게 되었습니다.
어디서 본 것은 있어가지고 처음 들어갔던 사이트가 WWW.NETSCAPE.COM , 그 뒤에 들어갔던 사이트가 WWW.PLA?BO?.COM (19금) 이었습니다. :)
이 시기에 가장 본격적으로 LINUX를 사용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호스트 동호회' 채팅방에서 만난 '포근한' 이라는
대화명을 가진 분을 통해서 여러 가지 리눅스에 대한 기본 정보를 배우게 되어 조금은 실력향상을 얻을 수 있었고 강좌나
HOWTO문서를 쫓아서 이것저것 실행을 하게 되면 화면이 마구 변하는 X-WINDOWS를 보면서 저에게는 엄청나게 큰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CO-LAN , 첫 전용선 사용, 사설BBS 대리운영, APACHE, SENDMAIL
중1 이 되던 해에 전화비를 측정하면서 다시금 여러 사설BBS에 접속하고 다니다가 리눅스 관련 여러 책을 집필하신
'서자룡'님이 운영하시던 '네토피아' 라는 사설BBS에서 접속하였는데 공지사항에 운영자를 뽑는다는 말에 응모했다가 합격을 하게
되어서 CO-LAN 이라는 전용선을 지원 받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파격적이었던 것은 이 네토피아 라는 곳은 'TT전용선 사업'을 병행하는 곳이어서 전화접속을 통해서 PPP 서비스도
했었고 , ATDT XXX-XXXX 이 아닌 BBS.NETO.CO.KR 이라는 인터넷 주소로도 사설BBS에서 접속할 수 있었던
곳 이었습니다.
이 당시 정말 가장 불타올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리눅스를 설치해서 CO-LAN 접속 스크립트를 수정해서 항상 ON-LINE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하고 SENDMAIL을 설치하고 APACHE를 설치해서 SUNGJOOLOVE.CJB.NET 이라는 도메인을
받아서는 이메일도 주고 받고 웹상에 허접한 저의 홈페이지를 띄우기도 했었습니다.
IRC, HANIRC, CLUG, 리눅스공동체세미나, MDWORLD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포근한님은 저로 하여금 IRC를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셨습니다.
IRC.CLUG.NET 이라는 천리안 리눅스 동호회의 IRC서버에서 깨비, 예지, 프시케, 적수, 가을향기 등등 그 당시 리눅스
쪽에서 꽤 이름을 알리고 있었던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동안 이 곳에서 많은 분들을 괴롭히다가
IRC.MDWORLD.COM 이라는 포근한님이 운영하시던 IRC서버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처음 번개에 나가서 여러 형들과
'카드'를 넣고 하는 오락실에서 DDR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그렇게 여러 서버를 알게 되면서 PIRCHAT 이라는 IRC 프로그램이 멀티서버를 지원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동안 CLUG,
MDWORLD, HANIRC의 #LINUX 채널에 상주해 있고는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리눅스의 펭귄이 맘에 들어서 '꼬마펭귄'
이라는 닉네임을 쓰다가 '낮은데로 임하소서' 라는 책을 본 뒤로는 '낮은자'라는 닉네임을 쭉 사용하고는 했었습니다.
그 당시 적수형님과 다즐링 형님을 저에게 G-LINE , K-LINE 등등 엄청난 벌을 내리시곤 했었습니다 ( 질문을 너무 많이 하고, 답변을 듣고는 그냥 사라져버린다고;; )
IDOO, NPTS , 다드림 & 표철민, POSCO 과학홈페이지
저는 복 받은 세대였을까요? 제가 중학생 때 몸을 키워 보겠노라고 갔던 헬스장의 잡지에서 IDOO라는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문윤기(HAZE)' 라는 동네 형을 보고는 무작정 찾아가서 IDOO 운영진이 될 수 있었습니다.
리눅스는 그 당시 제 삶과 컴퓨팅의 전부였습니다. 의정부를 떠나 서울, 대구, 부산, 광주 등등 지역에 LUG 형들을 찾아가 신세를 지면서 배우기도 하고 HOWTO 와 KLDP를 밤새도록 읽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실력에 자신감을 얻었을 때 지금의 위자드닷컴의 대표인 '표철민' 군의 다드림 이라는 회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같은 나이였지만 그는 저보다 한발 앞서 회사를 차려 돈을 벌고 있었고 자만에 가까울 정도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가득했던 저는 고등학교 진학과 함께 사업을 시작하겠노라고 해커즈랩을 비롯해서 여러 IRC에서 또래들을 찾아내게 되었습니다.
건축과 컴퓨터 모두에 관심이 있었던 저는 홈 오토메이션 시스템을 만들어 보겠노라고 NPTS라는 팀을 만들어서 또래의 친구들을 모아 리눅스와 임베디드를 공부하면서 사업가의 꿈을 키워 나가고 있었습니다.
중학교 시절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것은 POSCO 과학 홈페이지 대회에 참여하게 된 것이었는데 'IMT-2000'을 주제로 가작을 수상하게 되면서 미래의 사업 파트너가 될 여러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성화 고등학교, 고등학생 창업, T2DN 창업
의정부는 비평준화였기에 인문계 아니면 실업계를 택했어야 했습니다. 의정부의 인문계와 실업계의 스타일을 알기에 저는 의정부 내에
있는 학교에 진학을 할 수 없었고 전국에 특목고 또는 특성화 고등학교에 전화를 해서는 창업을 하려고 하는데 학교에서 지원을 해줄
수 있냐고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욕도 먹고 하면서 우연히 발견한 학교에서 지원 약속을 받고 입학한 곳이 평택에 위치한 '청담정보통신고등학교' 였습니다. 그리고는
함께 입학한 친구들과 운영하던 NPTS와 POSCO 과학홈페이지에서 만난 친구가 운영하던 팀이 연합해서 2001년 5월에 드디어
T2DN이라는 회사를 창업하게 되었습니다.
창업을 해서 참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계약서의 저희 회사 지분을 가져가는 내용을 적어서는 검토도 못하게 하고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만들려고 했던 사람도 있었고, 한 동안 청소년 창업의 붐을 만들려고 하는 TV방송의 인터뷰에 응했다가 자기들 스토리대로
맘대로 편집 당하는 것에 시달리면서 상처를 받기도 했었습니다.
청소년비즈니스연합회(KYEC), 사업을 통한 많은 경험, 사람, 배움,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너무 힘드니까 같은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모여서 함께 청소년비즈니스연합회(KYEC)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초대 회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명동 유네스코회관에 위치한 MIZY 센터에 컨소시엄을 통해서 사무실을 얻게 되어 YMCA,
HAJA를 비롯해서 영산대학교와 함께 창업 및 경제교육관련 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에 참여하면서 동료 및 후배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진행 했었습니다.
남들이 대학을 가기 위한 수능을 위해서 투자할 때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미래의 경영자가 되기 위한 사전경험에 투자를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겪었던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후배들이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제 자신 보다도 저와 함께하는 동료와
후배들을 위한 일에 많은 것을 투자 했습니다.
그리고 과정 들을 통해서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배움을 얻었습니다.
끝으로..
'거 소개 한번 무진장 기네.. 그래 너 잘났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많은 분들이 보게 될 공간에 글을 남기는
것이 쉽게 찾아오는 기회가 아니라는 생각에 부끄럽지만 지난 세월에 대한 이야기를 올려놓게 되었습니다. ( 이러한 저의 노력은 그
후로 16년... (1) - MSX-II 에서 LINUX 까지 라는 글을 통해서도 시도 된 적이 있습니다. )
저에게 허락된 이 소중한 기회를 기만하는 것이 아닌 열심히 실행하는 것을 통해서 기회를 주신 '소프트뱅크 미디어랩' 과 이 곳에 찾아오시는 여러 분들에게 보답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