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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 - 출판사의 카피에 속지 말자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직접 읽어라

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 - 백과사전을 통째로 집어삼킨 남자의 가공할만한 지식탐험
A.J.제이콥스 지음, 표정훈, 김명남 옮김   2007-12-21

32권, 3만 3천여쪽에 달하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2002년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 경험을 담은 책으로 100억년 역사의 지식을 먹어치운 한 남자의 대담무쌍한 기록이다. 각 단어에 대한 피상적이거나 단편적으로 설정되어 있는 글이 아닌 구체적인 삶의 모습으로 지식이 다가오게 한다.

이 책은 한때는 똑똑했으나 학교 졸업 이후 잡지 관련 편집자로 유행이나 연예계 가십에만 빠져있는 한 사람이 다시 한번 지적인 자극을 통해서 자신의 다시 한번 지적 성숙을 이루려고 하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산 이유는 어렸을 때 집에 있던 세계대백과사전을 읽던 추억 때문이었다. 요즘은 어떤 사실에 대하여 TV에 나왔다고 말하는 시대를 지나서, 인터넷에 나왔다고 말하는 시대이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백과사전에 나왔다고 하는 말만큼 모든 논쟁을 잠재우는 말이 없었다.

지금은 비록 위키피디아가 브리태니커를 제쳤다는 것이 더 이상 놀랄만한 기사가 아닌 인터넷 세상에 살지만, 백과사전이라는 집대성한 지식을 오롯이 담고 있는 책의 느낌은 권위를 넘어서 지식의 보고라는 느낌이다.

내가 백과사전이 갖고 있는 기억과 느낌은 저자와 비슷한 동기이지만, 언젠가 제대로 된 백과사전을 읽어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라는 책 제목에 혹해서 구입하게 되었다.

하지만, 몇 장을 읽지 못하고 내가 얼마나 얄팍한 생각을 했는지 뼈저리게 후회하게 되었다.

서바이벌이나 프로젝트 런웨이 등의 다양한 리얼리티 쇼가 횡행하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떤 남자가 3만 3000페이지 6만 5000개 항목으로 이루어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읽어 내려가는 모습을 쇼처럼 보여주는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브리태니커의 설명을 읽고 내가 내린 심오한 결론은 바로 다음과 같다. 아리스토텔레스, 그는 젊은 여자를 밝혔다’ 라든지

‘폭스사가 새 TV쇼를 내보낸다는 소리와 비슷하지 않은가? 여우가 쇼를 한다’ 라든지

‘물론 페트라르카와 단테에게는 매치닷컴 같은 대안이 없었으리라. 보다 원시적인 방법에 호소해야 했으리라. 음, 동영상 애인 모집 사이트 같은 거? 농담이지만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리라 생각한다.’
 
   
는 식으로 본인의 느낌을 유머러스 하게 표현하지만 질려버린다.

TV에서 하는 리얼리티 쇼가 인기 있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 책은 리얼리티 쇼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몰라도 브리태니커의 항목을 읽어 가면서 저자의 심리나 느낌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에 치중한다.

이 책을 옮기신 분은 ‘자기를 드러내는 글쓰기’의 좋은 사례라고 지적하시지만, 나는 이 책을 읽을수록 ‘백과사전을 요약해서 읽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결정이었는지 후회하게 되었다.

내가 25000원을 주고 660쪽짜리 책을 직접 사서 보고 이런 느낌을 느껴야 하는 것은 백과사전을 쉽게 거저 읽어 보겠다는 나의 얄팍한 생각에 대한 심판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이 책이 궁금하신 분들은 서점에서 잠깐 펴보시는 것으로 만족하시라. 

정 궁금하다면 차라리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읽어보시라. 위키피디아도 좋은 대안이다.

이 책에 나오는 유머가 좋다면 차라리 다음 아고라의 즐보드를 보는 게 나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