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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홀리 가든] - 메마른 목소리로 전해주는 두 여자의 사랑이야기

내가 과연 여자의 마음을 제대로 알 수 있을까?


홀리 가든 - 8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소담출판사

나에게 일본은 서울에서 비행기로 2시간이 체 걸리지 않는 곳에 있는 나라가 아니라, 남미 어딘가 쯤에 있는 것처럼 정서적인 거리감이 있었다.

우연한 기회로 일본에 여행을 다녀 온 뒤로는 호기심이 생기게 되었고, 음악, 드라마, 영화, 만화, 소설 등 내가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매체나 채널을 통해서 일본을 알아가게 되고 또 일본을 다녀오면서 조금씩 그 거리감이 좁혀지고 있다.

이 책은 ‘냉정과 열정 사이’로 유명한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으로서 그녀의 작품 중에서 내가 처음 접하는 소설이다.

안경점에 근무하는 가호와 고등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시즈에는 소꿉친구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서른이 넘도록 친구이다 보니,  아주 오래된 친구들이 늘 그렇듯이 서로 싸우기도 하고 상처도 주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이해하는 그런 친구들이다.

5년 전 헤어진 애인을 잊지 못하는 가호는 주변의 몇몇 남자와 관계를 갖고 있지만, 그들과는 단순한 섹스파트너일 뿐이다. 옛 사랑의 상처 때문인지 도무지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비스킷 깡통 속에 보관하고 있는 깨진 홍차 잔의 조각을 통해서 5년 전의 사람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호를 못마땅해 하는 시즈에는 유부남과의 원거리 열애에 푹 빠져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자극적일 수 있는 두 여성의 사랑(유부남과의 불륜)과 사람들과의 관계(아무 남자와 쉽게 자버리는)를 매우 사실적으로 그리고 어쩌면 이렇게 무미건조할 수 있을까 하는 목소리로 들려준다. 그전에 접했던 일본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보여주던 오버하던 일본사람의 모습은 사라지고, 진짜 일본사람은 이런 감성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에 조금 익숙해질 때면 내가 가지고 있는 일본에 대한 느낌이 오버랩 되는 것 같다. 무채색에 매우 정적이며 서로를 지나치게 배려해서 오히려 불편한 그런 느낌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껴진다.

일본 특유의 무채색 이미지와 간간하고 담백한 음식 맛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가호와 시즈에 두 주인공의 삶과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속마음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서 연구하는 것처럼 담담하게 지켜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나에게 소설이 재미있는 경우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상황이 너무나 실감이 나서, 소설이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 같아 내가 몰입하는 경우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 행동에 깊은 공감이 가서 ' 맞아. 어쩌면 이렇게 내 생각과 똑같지'하는 느낌으로 결국 나한테 벌어지고 내 생각과 같은 느낌이 드는 경우들이다.

이와 달리 홀리가든은 분명 처음부터 나를 확 끌어당겨서 한번에 푹 빠진 것이 아니라, 가랑비에 옷이 다 젖는 것처럼 한 장 한 장 읽다 보니 다 읽게 되고, 가호와 시즈에가 누구인지 궁금해지는 느낌이 드는, 객관적인 제 3자로서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관계, 생각, 느낌에 대해서 담담하게 내면까지 지켜보는 새로운 즐거움(?)을 알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