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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소니 침몰", 혹시 우리의 모습은 아닐런지요.

: "소니 침몰”의 원인, 과연 그들만의 상황인가?

소니 침몰 - 8점
미야자키 타쿠마 지음, 김경철 옮김/북쇼컴퍼니(B&S)

  필자와 같은 세대 분이라면 모두들 "워크맨"을 아실 겁니다. 우리들의 중학교 시절에 MUST HAVE 아이템이었지요. 요즘 중학생들에게 휴대폰과 MP3가 그렇다면 저희 시절에는 바로 "워크맨"이 모든 학생들의 1순위 구입 제품이었습니다.

  그 시절의 영향 때문이었을까요? 저도 소니에 대한 약간은 맹목적인 사랑을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대학교 때 아르바이트를 해서 처음 구입한 컴포넌트도 그렇고 총각 때 처음 구매한 VTR도 소니 제품이었습니다. 첫 디지털 카메라도 역시 소니 DSC-F505였고 그 다음 기종도 물론 같은 계열의 DSC-F828이었으니까요.

  왜 저와 같은 소니 매니아들이 그렇게 소니 제품에 열광을 했을까요? 그건 그 제품들이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수준의 차이라는 자부심(또는 허영심일까요?)을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냥 제품을 산 것이 아니라 “최고급 제품”이라는 인식을 구매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소니는 어떠한가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자신들의 텃밭이던 미국의 TV 시장에서도 삼성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이기에 세계적으로 추앙 받던 소니가 그런 모습으로 변했을까요?


소니 VAIO 노트북의 최대 성공작 Z505시리즈 사진 출처: Sony Japan

  이 책의 저자는 바로 최근 소니의 가장 성공적인 제품이었던 “VAIO”의 제품 기획자로서 근무했던 미야자키 타구마입니다. 저자가 1998년부터 2005년까지 근무했다고 하니 가장 최근의 소니 상황을 알려 주리라 기대하고 저도 책을 읽었습니다. 물론 저도 VAIO의 최대 성공작인 Z505 시리즈의 사용자이기도 했으니 얼마나 내용에 기대가 되던지.
   
  창업자가 초안을 작성한 "설립취지서"에는  "자유롭고 활달하며 유쾌한 이상공장의 건설"은 적어도 2000년까지는 소니 내부에 실제로 구현되었다.  
   

  정말 대부분의 엔지니어가 좋아할만한 단어("유쾌한 이상공장")들로 쓰여져 있는 회사 소개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의 2부인 “영광의 VAOI”에서 소개되는 소니는 정말이지 같은 엔지니어로서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모하게만 생각되는 이런 도전들은 결과적으로 PC의 미래를 개척해주었다. 이 도전을 가능하게 한 것은 만드는 사람의 신념과 열정이며, 이 신념과 열정이야말로 바이오의 철학이었고 더 나아가 소니의 철학이었다.  
   
  엔지니어에게 가장 가슴 떨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는 비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내가 만드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많은 사람들에게 “미래를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요. 그것이 바로 소니의 철학이었고 제가 좋아했던 소니의 모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밖에서 보기에는 좋아 보였던 소니의 변화들이 저자의 의견으로는 소니의 정신을 갉아먹기 시작합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그들의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그리고 컨텐츠로” 라는 전략은 시기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참조: 2007/05/25 - 삼성전자와 소니가 경쟁사가 아닌 이유) 하지만 반대로 그로 인해 잃은 것도 많았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입니다.
   
  과거 일본의 제조사들은 거의 모든 제품을 수직통합형으로 생산해왔으며, 이것이야말로 일본제품의 고품질, 고가격이라는 고부가 가치 전략을 성공시킨 근원이었다.  
   

  저자가 소니에서 크게 실패한 정책으로 언급한 경영 기법들 즉 EVA(Economic Value Added), 컴퍼니 제도, 수평 분업화 들은 이미 우리나라의 대기업에서도 친숙한 내용들이라고 할 것입니다.
무모하게만 생각되는 이런 도전들은 결과적으로 PC의 미래를 개척해주었다. 이 도전을 가능하게 한 것은 만드는 사람의 신념과 열정이며, 이 신념과 열정이야말로 바이오의 철학이었고 더 나아가 소니의 철학이었다.

  국내에도 많은 대기업들이 이미 부서단위까지 부가가치를 계산할 수 있는 EVA제도나 이를 발전시킨 컴퍼니 제도가 도입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제가 다니는 SI 회사는 이 기준이 나름 합리적이라 생각합니다만 일괄적인 적용은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는 컴퍼니제도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컴퍼니제도라고 하는 개념에 연구개발 분야까지 동일하게 포함시켜 버린 판단 미스에 있다.  
   

  더군다나 국내 제조업의 경우 분명히 소니와 같은 폐해가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사업부간의 경쟁으로 인한 정보 공유의 부재, 전사적인 수준의 R&D 투자의 어려움, R&D의 단기간으로의 편향성 등의 현상은 아마 여러분들도 느끼고 있는 내용이라 생각됩니다.
 
  이 책의 “붕괴하는 VAIO” 부분에서 얘기하는 모습들은 비단 대기업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관료주의적이 되어가는 개발조직, 튀는 사람들이 남을 수 없는 조직, 안이한 도피를 선택한 제품들, 회의가 업무인 매니저들. 어중간한 타협으로 만들어지는 제품들. 이들 대부분이 아마도 우리 주변의 성장통을 겪는 회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입니다.

  최근에도 심심치 않게 들리는 얘기가 있습니다. 코스닥에 올라간 모 회사는 이제 껍데기만 남았고 핵심 멤버들은 모두 빠져나가서 그 회사에 지금 들어가면 뒷감당만 하게 될 거라는 소문들 말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회사 초기 경영자와 핵심 멤버들의 “철학”의 부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들이 회사를 코스닥에 올린 이유는 “돈”에 대한 “철학”만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코스닥에 상장하여 많은 자금을 모아서 좀 더 큰 규모로 사회에 이바지하겠다는 꿈들이 있었다면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저는 이 책을 대기업에서 다니면서 회사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다고 생각되시는 분에게 우선 권합니다. 또는 중견기업에 다니시는데 회사가 발전하면서 뭔가 “달라졌다”라고 느끼시는 분들에게도  추천합니다.

  마지막으로 중소기업의 대표이신 분에게 필독을 권합니다. 회사가 성공해서 커지더라도 이렇게 망가지지 않겠다고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만한 내용이 많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찬찬히 보면 우리 주변에 첫 샴페인을 터뜨린 후에 급속하게 망가지는 회사를 많이 볼 수 있으니까요.

"소니 침몰”이 그들만의 얘기가 아닌 바로 우리의 이야기라 생각되는 건 저의 비약일까요?

북한산에서 피자 집을 해야 하나 고민 중인 퓨처워커
2007년 12월 4일

PS. 최근의 소니는 여러 사업을 정리하지만 아직도 그 실험정신(참조: 2007/09/10 - 안 팔릴 것 같은 소니 제품 "롤리" 칭찬하기)이 남아있어 보입니다. 제 사랑도 아직은 식지 않아서 작은 희망을 걸어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