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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누구나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고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한 3년쯤 전에 은행에 갔다가 창구 직원으로부터 "적립식 펀드를 하나 들지 그러세요? 요즘 많이들 가입하시고 수익이 꽤 높아요" 라고 권유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글쎄요... 이미 주식시장이 너무 과열된 거 같아요" 라고 말하고는 펀드에 들지 않았지요. 지금 가입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해서 거절한건데... 완전히 잘못 짚었던 것이지요.

그때 일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판단을 내릴때 전혀 합리적인 근거를 따지거나 논리적인 사고 절차를 밟지 않았더군요. 흔히 말하듯 '필이 꽃히는대로' 결정하고 만 거에요. 특히나 금전이 관련된 일이면 어김없이 비슷한 실수가 반복되었습니다(여전히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경제에 관련되어 비슷한 행동 패턴을 보여서 학자들의 주목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행동 경제학(behavioral economics) 이라고 해서 많은 학자들이 경제 활동의 심리적인 요인에 주목하여 연구해 왔더군요. 지금 소개해 드리려는 책은 행동경제학의 관점에서 사람들의 경제 활동에서 흔히 저지르는 실수의 원인을 쉽고 재미있게 규명해 주고 있습니다. 








돈의 심리학 - 심리학으로 엿보는 돈 이야기
개리 벨스키.토마스 길로비치 지음, 노지연 옮김   2006-05-19
집을 살 때는 많은 돈을 내면서, 왜 집을 팔 때는 적정가보다 낮은 값에 팔고 만족하는 것일까? 왜 많은 투자자들이 주가가 급등하기 직전 주식을 냉큼 팔아 버리고, 또 주가가 폭락할 때까지 가망도 없는 주식을 움켜쥐고 있는 것일까? 노벨상 수상에 빛나는 행동 경제학이 당신의 밑 빠진 지갑을 채워준다.




제목이 좀 노골적이지요? 이 책의 원제는 <Why Smart People Make Big Money Mistakes and How to Correct Them: Lessons from the New Science of Behavioral Economics> 입니다. 제목부터가 왠지 시비를 걸고 들어오는 것 같아서 그렇다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읽어나 보자 하고 집어들었습니다만, 여기에 실린 사례 하나하나가 저를 콕 집어서 이야기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가슴이 쿡쿡 찔리지 뭡니까. 워낙 흥미진진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만 여기에서는 맨 처음에 나오는 마음의 회계(mental accounting) 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TV에서 볼 수 있는 퀴즈 쇼 중  문제를 맞힐 때마다 상금이 두 배씩 늘어나는 재미있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있습니다. 10문제를 다 맞히면 1000만원을 상금으로 받을 수 있는데 아홉 문제를 맞춰 500만원의 상금까지 확보했다고 생각해 보죠.  다음 문제에 도전해서 맞추면 1000만원을 받을 수 있지만 도전했다가 맞히지 못하면 지금 받을 수 있는 500만원마저 잃고 맙니다. 이런 경우 도전자의 거의 대부분은 마지막 문제까지 풀어보려고 합니다. 수많은 관객과 전국의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돈 때문에 마지막 도전을 피한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은 이유겠지만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어차피 공돈' 이기 때문입니다. 행운의 선물로 받은 것이기 때문에 때로는 무모한 도전도 할 수 있고, 그 결과가 실패로 끝난다고 해도 어차피 제로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니 나의 본업에는 아무런 지장도 가져다 주지 않으니까요. 카지노에서 계속 돈을 따다가 막판에 홀라당 잃게 되는 것도 그 아래에 비슷한 심리적인 작용에 의해서라고 할 수 있지요. '이번 한번만 성공하면...' 하는 욕심도 있지만 ‘어차피 잃어도 재미삼아 1000원갖고 시작했는걸’ 하는 안도감이 뒷받침해주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행동경제학자들은 바로 그런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합니다. 카지노에서 1000원으로 시작해 500만원까지 땄다가 그다음판에 잃어버렸다면 실제로 잃은 돈은 원래 내 돈 1000원과 공돈 499만9천원이 아니라 500만원이라는 걸 사람들이 자각하지 못하는 현상, 이게 바로 ‘마음의 회계’ 라는 것입니다. 어느 날 우연히 서재에 꽃힌 책을 펴보았다가 작년에 몰래 끼워둔 비상금을 발견했을 때 공돈 생겼다고 좋아하는 것도 마음의 회계의 한 예가 됩니다.

행동경제학자들의 조언을 따른다면 출근길에 주운 만원짜리를 가지고 직장 동료들에게 박카스를 돌릴 게 아니라 바로 은행에 저금하던가 펀드에 넣어야 바람직한 행동이겠지요. 너무 구두쇠같지 않냐고요?  바로 그게 마음의 회계의 함정이라는군요. ‘같은 돈인데 어떤건 공돈 취급을 받고 어떤건 소중한 자금으로 다뤄진다. 왜 돈을 차별하느냐?’ 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거꾸로 던지고 있는 셈입니다.

마음의 회계 말고도 <돈의 심리학> 에서는 모두 다섯 가지 큰 행동경제학적 실수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처럼 평소에 ‘돈이 줄줄 새는데 어디에 써버리는 지 모르겠다’ 라고 고민하시는 분들께 한 번 읽어보시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지적 만족은 물론 지금까지의 행동 패턴에서 벗어나 보다 현명한 생활로 이끌어 주는 좋은 기회가 될 지도 모르니까요(저는 아직 행동의 변화까지는 이르지 않았습니다만, 글쓴이들의 주장에 상당한 자극을 받고 이리저리 고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