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 라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속담입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일부를 숨기고 사는 사람의 습성을 지적한 것일수도 있고, 내면의 정신세계의 방대함과 복잡함에 대한 고백일수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의 내면조차도 다 모르지 않나요. 저만 해도 몇년 주기로 제 자신에 대한 인식이 계속 바뀌었습니다. 숨겨진 성격이 일정 나이가 되어서야 나타나기도 하고 예전 성격 중 하나가 사라지거나 변해버리는 걸 느끼면서 당혹해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자신에 대해서도 이러니 타인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특히나 서로 알 수 없다고 토로하는 것이 이성의 마음속입니다. 행동하는 방식이나 습성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나 바라는 것이나 무엇 하나 제대로 일치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결혼하신지 40년에 가까운 우리 부모님만 해도... 이제는 두 분이 대화 없이도 척척 알아채실 만도 한데, 일상생활 중에 그렇지 않은 장면이 때때로 눈에 보이곤 하거든요.
그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가장 널리 알려진 책은 아무래도 존 그레이가 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일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처럼 태생적으로 다르니 둘 사이의 관게에서 서로 그 점을 유념해야 한다라는 일종의 지침서와 같은 책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성향의 차이를 상담가로서의 풍부한 경험을 통해 정리해 두었기 때문에 책장에 한 권 비치해 놓고 이따금씩 뒤적거릴 만한 가치가 있는 명저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로 비슷한 유형의 책이 몇 권 더 서적에 있는 걸 보았습니다만 아무래도 <화성에서...> 만은 못하더군요. 그러던 차에 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한 책을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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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뇌, 여자의 발견 - 여자와 남자의 99% 차이를 만드는 1%의 비밀 루안 브리젠딘 지음, 임옥희 옮김 2007-06-18 여자에 관련된 다양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이 책은 여자의 뇌에서 찾는다. 이 책은 여자 뇌에 대한 세밀한 분석을 통해 여자를 제대로 하기 위한 생물학적 실마리를 제공한다. 지은이에 의하면 여자와 남자의 유전자 코드는 단 1%의 차이를 갖는데, 이 1%가 남자와 여자의 결정적인 차이를 갖는다. |
이 책을 쓴 루안 브리젠딘은 신경정신과 의사입니다. 자신의 직업적 기반을 통해 얻은 지식을 배경으로 그녀는 뇌 기능과 호르몬의 작용이 얼마나 성격에 영향을 끼치는지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읽다 보면 '맙소사. 그렇다면 이 모든 일이 다 호르몬 때문이란 말이야?' 하고 아연해 할 정도입니다. 유아 시기로부터 완경기에 이르기까지 시기별로 여자의 신체가 어떻게 변화하고 기간마다 보여지는 행동 특성을 유발하는 호르몬의 분비과 뇌를 비롯한 신체 기관의 작용에 대해 세심하게 설명해 주니까요. 예를 들자면 이런 식입니다.
사춘기 소녀의 뇌에서 특정 부분, 즉 기억과 학습에 관련된 해마상융기, 몸의 자기를 통제하는 시상하부, 감성을 조정하는 소뇌편도 등은 새로 분비되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이라는 연료의 영향을 특히 많이 받는다. 그 결과 비판적 사고가 더욱 날카로워지고, 감성적 반응은 더욱 예민해진다. 이처럼 고양된 뇌회로는 사춘기 후반 무렵쯤 초기 성인기로 접어들면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는다.
<여자의 뇌...> 를 읽으면서 어렴풋하게나 인식하고 있던, 여성의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사고나 행동에 대해 '아하 이래서 그렇게 된 거구나' 하고 맞장구를 치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후반부쯤 가다 보니 이런 생각이 슬슬 들더군요. 내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 너무나 쉽게 수긍해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 말입니다. 신경정신과 의사라는 지은이의 권위와 (검증을 거쳐 의심할 여지 없이 밝혀진) 과학적 설명이라는 두 가지에 스스로 주눅들어 마치 기독교인이 성경책을 대하듯 절대적으로 받아들이려는 함정에 빠진 게 아닐까 하고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책을 통해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여서 내가 변할 수 있다면 그 이상 좋은 일이 있겠습니까. "이 사람 대체 왜이래?" 라며 전적으로 상대에게 문제가 있다고 단정하던 것에서 한 걸음 나아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구나" 하고 이해하고 대할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 말입니다. 이 책은 그런 정도까지 받아들이는게 적당하리라 생각합니다. 그 이상 넘어가면 맹신의 단계에 빠져들고 말 것만 같더군요.
※ 이글루스 블로거 clio 님의 - 이분은 미국에서 도서관 사서로 일하시면서 해박한 지식을 알기 쉽고 친절하게 소개하는 좋은 글을 많이 올리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고 싶습니다 - 화성과 금성의 신화 라는 글에서 <여자의 뇌...> 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였으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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