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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명령해서 창조적으로 일하게 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진화론”

획일적 대량생산의 문화로부터, 1천 가지 틈새시장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는 유연성이 대세인 문화로 변신해야 한다. ('대한민국 진화론' 중에서)

대한민국 진화론 - 10점
이현정 지음/동아일보사

이 책은 꽤 특이한 구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성장 과정, 한국인과 한국문화, 한국의 기업문화, 그리고 저자의 결혼생활 등 별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다양한 주제를 한꺼번에 담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결국 이 책이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면 다양한 내용을 담았다며 좋아할 것이고, 이 책을 저평가하는 사람이라면 산만한 구성에 대해 비판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저자와 이 책이 마음에 들기 때문에 별 다섯 개를 주겠습니다. 저자와 같은 대기업에서의 경험으로 인해 내용이 더욱 와닿았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구성에 있어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책 제목도 내용과는 좀 매치되지 않는 느낌이지요(원래 제목은 '청개구리의 독백'이었는데 출판사에서 바꾸었다고 하네요). 몇 가지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시각은 매우 독특하고 매력적입니다. 또한 한국인의 저서에서는 쉽게 만나볼 수 없는 해석과 해법이 담겨 있습니다.
 
보수적인 한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일찍이 판단한 저자는 대학 졸업식도 마치기 전에 미국으로 떠납니다. 그 이후 한국에 올 때까지 저자의 경력은 모두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즉 저자는 성장기를 한국에서 보냈고, 20년 이상을 미국에서 보냈으며, 최근 5년간 한국의 대표적인 대기업에서 임원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 저자는 과연 무엇을 느꼈으며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을까요?
 
저자는 먼저 ‘나’라는 사람에 대해 솔직하게 말합니다. 냄비 닦는 인생이 싫었다면서 “좋은 데 시집이나 가라는 생각”을 사회적 규모의 사기 행각이라고 얘기합니다. 저자는 이런 식의 직설적인 표현을 즐겨 씁니다. ^^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360도의 시야를 갖추게 되었고, 변덕스러운 주위의 의견과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의연함도 배웠다고 합니다.
 
저자 스스로 얘기하는 '나만의 경쟁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이 잘되는 요인과 ‘그렇기 때문에’ 사업이 잘되는 요인을 구분하고, 항상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의 연장선상에서 숨은 그림을 보려고 노력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 (p. 34~35의 내용을 요약 정리)  
   
그리고 저자는 한국사회에 대해 신랄하게 진단합니다.
 
양파 껍질 하나만 벗기면 한국은 여전히 농경사회
 
실제로 한국은 겉으로만 최첨단일 뿐 의식구조와 가치관은 농경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상명하복식의 조직문화가 대세이며, 회사들은 맨날 창조와 혁신을 얘기하지만 실제로 창의적인 사람이 입사를 하게 되면 그를 기존 질서에 편입시키기 위한 길들이기에 몰두하는 것이 한국기업의 현실입니다.
 
또한 저자는 한국인의 발달장애와 피해망상형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적나라하게 진단하고 있습니다. 
   
  외부 시각에 민감해서 남이 나를 조금이라도 좋게 보면 흥분하고, 반대로 조금이라도 좋지 않게 보면 분개한다. 이러니 성숙한 내부 성찰과 비판이 어렵다. 적의 시각으로 우리 자신을 비판하는 것을 이적 행위로 간주한다. (중략)... 내부의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할 소신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그것도 우리보다 우월한 지위의 누군가가 우리를 긍정적으로 평가해주는 것에 목을 매는 법이다. (p. 53에서)  
   
한국의 겉치레 국제화와 포장만 국제화된 엘리트의 한계에 대해서도 지적을 하고 있는데, 유학을 계획 중인 분이라면 특히 명심해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여러 사례들을 통해서 단지 학교와 집만 왔다갔다 하면서 최소한의 공부만 마치고 한국으로 바로 돌아온 가짜 글로벌 엘리트들을 많이 목격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에 대해 얘기합니다. 두 번째, 세 번째 기회를 쉽게 수용하지 않는 사회에서 개인은 안전제일주의를 선택할 수 밖에 없지요. 저자는 개인의 실패와 시행착오가 다른 구성원의 성공으로 이어져 전반적인 사회발전을 가져온다고 말하고 있으며, 한국도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창조적인 조직문화를 위해 달라져야 할 것들
 
엄격한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행복해져라”라고 명령한다고 해서 자식들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듯이, 경영진이 정의하고 결정해서 조직원에게 설파하는 창조적 혁신은 그 자체가 모순일 것입니다. 왜 창조적이지 못하냐며 때린다고 해서 창조적으로 일할 수는 없는 법이죠.

하지만 한국기업들은 창조적으로 일하라고 명령하며, 구성원들의 동질성에 대해 강조하고, 똑같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기업문화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창조적인 결과물이 나오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리고 충성과 무능과 소신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저자는 통찰력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현실을 보면, 경쟁력이 없는 사람들이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라는 화려한 외형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는 경우가 많죠. 
   
  한 회사에서 30년 동안 자리를 지키는 것도 좋다. 단, 그것이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어야 한다. 밖에서도 충분히 자생력이 있지만, 자신의 능동적으로 선택했기에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p. 177중에서)  
   
야근은 반가정적인 근무시간입니다. 저자는 반가정적인 근무시간의 근본적인 원인은 인적자원의 비효율적인 관리, 그리고 지식산업에 종사하는 직원의 시간을 마치 무한정 자원이라고 생각하는 기업 정서에 있다고 얘기합니다. 기업을 떠나는 사람을 분석하면 기업의 문제를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당연한 사항을 많은 기업들이 간과하고 있을까요? 한국기업들은 모든 문제를 단지 떠나는 사람의 문제로 치부하며 교훈으로 삼지 않습니다. 조직은 언제나 옳다는 생각 탓이겠죠. 획일적 사고를 중시하는 문화는 한편으로는 섬찟합니다.
 
한국시장에서는 인수합병(M&A)이 경제 규모에 비해 참으로 적습니다. 앞으로 인수합병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기업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인수합병을 하는 것이 힘들 뿐만 아니라 했다고 할지라도 실패할 위험이 높을 것입니다.
 
다양성. 저자가 한결같이 주장하고 있는 키워드는 바로 ‘다양성’인 것입니다.
 
가족관계에 희생이란 없다
 
끝으로 저자는 자신의 결혼과정과 결혼생활, 남편 및 두 아들과의 관계에 대해 진솔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의 어떤 지인은 이 책을 보고서 국제결혼을 꼭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정도라고 하더군요. 그만큼 책을 통해 느껴지는 저자의 결혼 생활은 무척 쿨합니다. 이 부분은 선입견 없이 그냥 편하게 읽어보세요.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 내용들이니만큼 더 이상의 언급은 생략하겠습니다.
 
이 책은 정말 다양한 주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담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메시지가 담겨 있어서 일반적인 자기계발서나 처세술 서적과는 달리 메시지의 혼란스러움이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 책들은 지겨우리만큼 하나의 메시지만 강조하죠. 그 결과로서 어쨌든 메시지 자체는 분명히 다가옵니다.)
 
네, 이 책은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모든 메시지를 캐치하기 위해서는 필히 메모가 필요할 거 같습니다. 마음에 드는 문장에 줄을 긋고 메모를 하면서 읽는다면, 보다 오랫동안 저자의 인사이트를 기억할 수 있고 간접경험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저자의 멘트 하나를 소개하며 본 서평을 줄입니다. 그래요, 바꿀 수 없으면 활용해야죠. ^^
   
  자기 집에 누가 오물을 갖다 부었으면 그것이 정원의 비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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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 저자의 한국에서의 마지막 강연회 및 독서토론회가 1월 19일(토) 오후에 개최됩니다. 자세한 사항은 행사 공지를 참고하세요.